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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인의 시, 그리고
오늘 나는 / 박숙인 조금 씩씩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싶다 변해가는 그 모습에서 내 안의 쓸쓸함을 저만치 밀쳐두고 싶은 날이기도 하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마음의 소리 들려주고 싶은 그런 날이라 아슬아슬한 나를 잠재우고 한 잎 두 잎 거리에 쌓여가는 낙엽을 뒤로하고 힘차게 내딛는 길 위에 서서 지금은 가을이다 라고, 말해주듯 나도 그들 속에 섞여 오늘을 쓰는 중이다. 2023, 10. 16
가을의 시간 / 박숙인 여름 끝자락에서부터 너에게로 가는 길을 서성였던 나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주체할 수 없었던, 그 가을은 내 길목까지 차올랐어도 내 안에만 갇혀 있었다 견뎌야만 했던 기나긴 어둠의 시간 깊어져 가는 가을 곁에서야 한 여자가 서 있다 나뭇잎 뒹구는 거리엔 한없이 쓸쓸하고 서늘한 적막만 흐르고. 2023, 10, 16
그늘이 깃든 곳에 / 박숙인 이 봄날, 늘 그래왔듯이 햇볕을 탐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들과 섞이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지만 얼마나 많은 희망을 품었을까, 애틋한 눈빛으로 들여다보는데 마음 한편이 시려올 때가 있다 네 안의 쓸쓸을 견뎌내며 사랑의 꽃으로 있으라고, 하면서 뒤돌아서는데 눈물이 터질 것 같더라. 2023. 3.17
함께 가는 길 / 박숙인 길 위에 길을 내어가는 어느 가을날이었지 백지영의 사랑 안 해" 노래를 들으며 뒤따라가다 빗길에 미끄러져 사고가 났어 모처럼 가을 여행을 떠난 동행한 분들에게 이 얼마나 미안한 일인가? 웅성웅성 놀라서 모두들 곁으로 와서 살피는데 아픈 것은 뒤로 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지 모든 일정 접고 동행한 문우님들과 병원으로 이동하였다 밤늦은 시간까지 4시간 기다리다 꿰매고 돌아가는 길 새벽 창가에 빗방울 소리만 들려왔다 9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날의 추억으로 결속된 우리들은 다가오는 4월에 남해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지 오늘은 그 생각에 가 닿아 따뜻한 기억으로 머물러 길 위에서 피어난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었네. 2023. 3.17
금요일 오후, 바람 저편에 / 박숙인 보이지 않은 마음이어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후드득 쏟아지는 꽃잎 사이로 마음자리를 휩쓸고 가도 가슴에만 두고 긴 시간의 여행을 하고 있다고, 그렇게 무심한 듯 흘려보낸 세월이었지 그동안 안부조차 묻지 못한 그녀에게 긴 세월 참 미안했다 지금쯤 그녀는 봄날을 놓치기 싫어서 알뜰하게 시 한 편 쓰고 있지나 않을까, 한껏 고조되어 다시 널뛰는 마음을 다잡고 있지나 않을까, 아득하지만 안녕, 안녕 잘 지냈느냐고 이렇게라도 편지를 쓰는 나를 이해해다오 보.고. 싶. 다. 2023, 3.17
햇살 좋은 날에는/ 박숙인 모든 것은 한때라는 생각에 갇혀 매 순간 주인공이 되어 늘 그 나무에 향기를 가득 메우던 당신이라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무심한 세월 뒤에 숨었다 그래도 나의 꽃나무었는데 다시 그 시간 속으로 질주할 수 없어도 꽃피는 소리라도 들어야겠다. 2023, 3.16
긴 오후 / 박숙인 가만가만 나를 부리려 길거리에 몸을 내밀고 매일매일 줄 서는 사이로 20분가량을 분주히 걷는다 적당히 부는 바람길을 내어 가다가 까르르 웃는 연인들과 마주치는데 하나 같이 해맑기만 하다 어깨에 기대어 햇볕에 몸을 내어 주는 그들 속에 나를 스치는 것들 햇살과 바람과 그리고 그림자 뒤로 가끔 서성이던 당신은 곁에 없고 쓸쓸하게 넘나드는.. 긴 오후가 낯설다 2023, 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