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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인의 시, 그리고
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 카프카/이만섭 엄밀한 의미에서 시란 쓰는 것 보다도 읽는 것이 더 어렵다 하겠다. 이유는 간단하다. 쓰는 것은 화자의 몫이고 읽는 것은 곧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남에 글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쉽지는 않다.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시를 쓰고 또 시를 읽는다. 왜 그럴까. 시를 쓰는 화자나 시를 읽는 독자나 시가 우리의 삶에 필요한 한 부분임은 분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곧 탐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끊임없이 의미를 쫓아야 하고 독자는 부단히 시의 이해를 추구해야 하는것이 시의 성질이다. 바꾸어 말하면 행위의 과정에 역점을 두는 것이 문학을 하는 맛이다. 쉬운 시는 쉬운 시 대로 어려운 시는 어려운 시 대로 그 맛을 헤아리기에는 적당한 고..
저녁의 우편함 이만섭 기다림은 고루하다 저물녘에도 오지 않는 마차와도 같이 귓전에는 덜컹거리는 바퀴 소리뿐 세월의 중압감을 견디면서도 촉수들은 일제히 문밖을 향하고 그 숲의 가문비나무 가슴앓이의 생채기로 나이테를 그리며 수령을 키운 그림자들 빈 둥지 같은 녹슨 철제 함에는 하마 소식이라도 당도했을까 들여다보건만 어둠보다 짙은 그늘이 차다 외롭다는 것은 누군가가 부재중이다는 것이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서늘히 젖어오는 날 선 그리움 장승처럼 붙박인 너를 바라보다가 불현듯 내가 닮는다
그리움 / 이만섭 너를 만나는 일이 이리도 쉬운지 내 시선 머무는 곳마다 네 모습은 창이 되고 하늘이 되고 꿈이 된다 단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마음을 쫓아서 시간은 기억자리를 찾아 나서지만 여직껏 나는 무었을 하고 있었던지 이토록 무심키만 하다
가을의 문/ 이만섭 기다림의 창 끝간데 없이 깊어간 가슴에 그리움을 내려놓으니 환희로 용솟움치던 찬란을 꿈꾸어 온 언어가 마침내 편지처럼 계절들목에 꽂혀 있다 오고가는 것들은 오직 하나의 길위에서 맹세를 한다 가슴 젖도록 고운 색감으로 물들어 창마다 들려오는 노래소리 모듬이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비로소 이 가을이 꿈의 알집에 서는가 보다
봄바다에 가 보아라/ 이만섭 이 봄에는 봄바다에 가 보아라 푸른 물깃 높이 파도살을 올려 깊이도 패이는 물이랑의 설레임을 보아라 저 환호하는 몸짓은 어느새 가슴에 요동쳐 올 것이다 그때 바다는 바다가 아니다 파도는 파도로 일렁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분출하는 마음의 출구 뜨거운 너의 심장이다 깊디깊은 겨울 골짜기에서 주검인 양 침잠으로 누워있던 꿈조각 허물을 벗고 속살을 드러내니 열정의 깃이 푸릇루릇 돋는다 갈망이 깨어나는 순간이다 부디, 이 봄에는 봄바다에 가 보아라 푸른 물깃 높이 일렁이는 파도살 위에 비상을 기다리는 창공이 있을터이니 그곳에 한번 나래를 펴 보아라
슬픈 목각 인형 / 이만섭 유리성 꼬까방 창 맡에 슬픈 목각 인형 하나 물끄러미 햇살을 받고 있다 창은 시야(視野) 밖에 지난 날의 푸르름을 쫓아 진초록 숲을 펼쳐 놓고 종일토록 그리움에 비틀거리게 한다 그 언제 이던가 숲을 떠나 올 제 눈이 퉁퉁 붓도록 몇 날을 울었던 기억이 야적된 산판(山坂)에는 밤이면 솟쩍새가 울고 앵초꽃은 왜 그리도 노랗게 피어 눈물로 얼룩지게 했던지 수없이 가슴을 베이고 만신창이가 된 돌아갈 수 없는 영어(囹圄)의 몸 달아진 사지(四肢)는 뼈마디로 불거져 이제는 지칠 때도 됐는데 이제는 시들해 질 때도 됐는데 돌아 누우면 따라와 함께 눕는 저 파도같은 그리움 몽롱한 시야에 풍경은 꽃잎처럼 날리고 흐르는 물에라도 추억의 안부라도 묻고 싶은지
조간 신문 / 이만섭 창을 건너온 아침 햇살아래 두 손으로 조간신문을 펴 든다 접혀있던 페이퍼의 양 날개에서 채 마르지않은 잉크의 수분이 확, 미립자로 날아든다 개중에 몇몇 날지 못한 냄새는 알갱이처럼 무릅 위로 주르르 내려앉아 자화상의 편린들로 불거진다 어떤 것은 이지러져 파닥이고 또 어떤 것은 해맑게 웃음짓는다 다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그 가운데 질척이며 나딩구는 사연 하나가 어제의 아픔을 고스란히 전한다 하얀 수국이 창문 옆에서 해맑게 웃고있는데 우울한 소식들이다 우리는 이 아침에 왜 참회록을 써야 하는가 오늘이 내일 이 자리에 찾아 왔을 때 저 수국처럼 하얗게 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