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박정원 시인 ] (3)
박숙인의 시, 그리고
가까운 방 박정원 송장 하나 밀어내놓고 축축하게 올려다보는 북한강하류 사진을 찍고 인양되기까지 까치 한 마리가 미루나무 가지가 부러지도록 울어쌓는다 경찰은 타살가능성에 더 무게를 실었다 신발을 벗고 있지 않았으므로 불과 몇 백 미터 떨어진 북한강철교에서 누군가 밀어뜨렸을 거라는 단호한 추측이 양수리주민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날이후 강가를 거닐 때마다 나는 빤히 바라만보고 있었을 강물에게 묻곤 한다 포의수(胞衣水) 같은 물속의 방으로 들기 위해 신발을 신고 간 거니 아니면 다시 돌아오기 위해 벗지 않은 거니 이 방과 저 방 사이가 한순간 거리구나 몇날며칠 되뇌는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물비늘만 띄우는 강물 그 속에도 누군가의 방이 있어 잠시 머물다 간다는 듯 꽃묶음 하나 강바람에 파르르 떤다 - 시..
길 따라 가는 길 /박정원 사람들이 낸 길을 따라 정상에 다다랐다 몇 천년을 살고도 모자라 아직도 두 팔을 벌리고 서있는 구상나무, 오랫동안 살았으므로 버릴 것도 많았으리라 가지가지 고통과 불행의 정도에 따라 색깔을 달리하는 단풍처럼 구차하게 매단 식구 하나 없이 벌거벗은 몸 그대로 하늘을 꽉 채운다 한 그루 나무로 태어나기 위해 여린 싹에서부터 시작하여 한번쯤은 높푸른 하늘을 가리고 사는 일이란 여기까지 오는 동안 흘린 땀방울 이상으로 내 무게를 줄이는 일이었던가 제 몸 하나도 변변히 가누지도 못한 채 허리가 굽어있는 나무들, 그래도 빳빳이 고개를 치든 자존심의 물관을 타고 계속 나는 노를 저어갈 것이다 그리하여 나뭇잎을 떨어뜨린 날들의 일기장을 펼친 후 그대로 흉내내며 내 몸 속의 단풍진 이파리들을 ..
깨꽃을 검색하다 / 박정원 길은, 학교운동장에서 끊겼다 얼굴 없는 걸음들이 딴죽을 치는 사이 어린 깨꽃이 짓밟혔다 CCTV는 항상 뒤태만 저장해 놓았다 검은 모자를 눌러쓴 마스크도 모자이크처리 되었다 교실 뒤편에 눌어붙은 핏빛 꽃물만 몇 날 며칠, 보여주고 또 보여주었다 초가을이었다 조회 수가 제일 많았다 그뿐이었다 - 2010.가을호 발표/ 2011 재수록 ------------------------------------------------------------------------------ * 정보화 시대에 이른 요즈음 사람들은 컴퓨터를 비롯한 각종 사이버 공간을 통하여 제공되는 지식과 정보에 많이 의존하여 생활한다. 그런데 이 시는 그 사이버 공간의 하이퍼 리얼리티(Hyper Reality)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