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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인의 시, 그리고
2022년 《시인수첩》 신인상 당선작_ 김은닢 / 소녀는 북풍을 타고 날아다녔다 外 소녀는 북풍을 타고 날아다녔다 소녀가 파랗게 질렸다 거인이 소녀의 목소리를 삼켰다 풀어헤친 머리칼이 작은 얼굴을 휘감는다 훌쩍이는 말들 검은 씨앗으로 심장에 박혔다 밤마다 소녀는 북풍을 타고 날아다녔다 귀에 태엽을 감고 살바람과 들판을 달렸다 오르골처럼 바람은 소리를 남기고 떠났다 넝쿨 숲을 열면 어떤 악몽이 튀어나올까 거인이 소녀의 발꿈치를 깎아서 신발을 신겼다 다정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내가 네 엄마란다, 무덤가 개암나무가 아무도 모르게 붉은 꽃을 피웠다 소녀의 옆구리에 이파리가 돋는다 발바닥에 잔뿌리가 내린다 종아리와 팔뚝이 터지고 갈라지며 두터운 껍질로 뒤덮였다 가는 우듬지 열어..
2023 靑色紙 신인상 당선작 어둠 (외 4편) 유주연 저 편에 촛불과 램프 그 아래 놓인 편지 당신은 힘겹게 등을 말아 두터운 헤링본 그레이 블랑켓을 걷고 협탁 앞으로 걸어간다 제임스와 제임스는 자고 있다 창 밖으로 어렴풋이 인기척이 들려 당신은 커튼을 친다 손이 차가워지기 전 봉투를 찢어 편지를 꺼내는 당신 봉투는 아주 얇아서 봉투 뒤로 당신 얼굴이 비치는 것 같기도 하다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다 어느 새인가 멍해지는 당신은 고통을 달리 표현할 줄 몰라 없는 소리로 다만 웅얼거린다 웅얼거림을 멈추고 주먹만을 꼭 쥔다 이제 당신 주변의 어둠이 눈 앞의 빛보다 크게 느껴진다 새와 백자 사위 고요한데 별이 모로 쏟아지는 통창을 둔 흰 공간에서 피아노 한 음 한 음 누르며 대기가 음악에 스며든 흔적 저 ..
[좋은 시, 바른 시의 지침] -강인한 [백록시화] 시업詩業을 절체절명의 소명으로 기리면서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시인 몇을 알고 있다. 강인한 시인도 내가 아는 그런 시인들 중의 한 분이다. "열 아홉살무렵부터 나는 목숨을 걸고 시를 쓰기로 작정하였다.문학수업을 나처럼 치열하게 하는 친구가 내 주변에는 별로 없었다치열하게 읽고 쓰는 것 말고는 나에게 다른 것은 별로 가치가 없었다. 그러므로 문학은, 아니 시는 나에게 하나의 종교였다" 강인한 시인이 육신 나이 80을 맞으면서 펴낸 [백록시화](POSITION)서문 글의 일부이다. 강인한 시인은 우리나라에서 발표되는 현대시를 많이 읽고, 분석과 감상의 결과를 그의 블로그 [푸른시의 방]에 올린다. 그의 글은 차갑고 가차없다. 촘촘히 펼쳐진 그의 비평 안목이..
2023 현대문학 신인추천 시 당선작 _주소력(住所歷) / 봉주연 심사위원 : 박상수 ⸳ 이혜미 주소력(住所歷) 그렇게 나갔다가는 추울 거야. 아침저녁으로 후회하기 위해 봄날이 있는 것 같아. 늦은 저녁 놀이터에서 나란히 그네를 탔다. 뭐 이런 데서 놀아. 핀잔을 주면서도 누가 더 높이 올라가나 시합을 벌였다. 식탁 아래에 들어가 있는 걸 좋아해. 호텔 로비에 있는 그랜드피아노 아래에 들어가기도 했다. 벙커 침대를 갖고 싶어. 어디서 그런 말을 알아 온 건지. 나는 갖고 싶은 것을 분명히 말하는 아이가 아니었는데.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분명히 말하는 사람을 보면 스스럽게 느껴져. 우리는 모두 이불에서 태어난걸요. 천에서, 유연함 속에서. 어른들의 무릎까지 오는 아이들. 아이들의 정강이까지 올라온 계단 한..
포지션 신간 안내 포지션 비평선 002 백록시화 도서명 : 백록시화 저자 : 강인한 출판사 : 포지션 판형 : 145*220mm 면수 : 480쪽 값 : 25,000원 발행일 : 2023년 6월 15일 ISBN : 979-11-93169-09-4 03810 [출판사 서평] 시력 56년 강인한 시인, 오늘의 시를 말한다 시화(詩話)는 시에 관한 온갖 이야기들이다 시화(詩話)는 우리나라에서 고려 말 이인로에 이어 조선 초 서거정의 『동인시화(東人詩話)』 에서 그 뿌리를 찾아볼 수 있다. 시화에는 첫째 시의 본질을 논의하는 시론(詩論), 둘째 시의 작법을 제시하는 작시론(作詩論), 셋째 시 작품이나 시인을 해설⸳평가하는 시평(詩評), 넷째 역대 시인들의 행적이나 시작 배경의 숨은 이야기를 서술하는 시 일화(逸..
문명의 바깥으로 | 나희덕 시론집 나희덕(지은이) 창비 2023-04-28 280쪽 153*224mm 424g ISBN 9788936463625 정가 20,000원 *표지를 좌우로 펼쳐보면 장정(북디자인)의 의도가 드러납니다. 책등에 큼직한 도형이 걸쳐져서 앞표지의 이것은 마치 'ㄱ'자 형태로 보입니다. 전체적으로 그것은 시꺼멓고 커다란 '디귿자' 모양인데 터진 쪽을 아래로 세운 디자인(민희라)입니다. -카페지기 識(지) 책소개 대산문학상, 백석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시단의 큰 기둥으로 우뚝 선 나희덕이 시에 대한 철학과 그간의 관심사를 촘촘하게 엮어 시론집 를 펴냈다. 1989년 등단 이래 쉼 없이 추구해온 생명·생태·환경 등의 시적 주제가 유려하고도 날카로운 언어로 가득 차 있다. 나희..
암시랑토앙케 정양 시집 암시랑토앙케 | 몰개시선 2 정양(지은이) | 몰개 | 2023.01.27 128쪽, 120*190mm, 166g, ISBN 9791188071562 정가 12,000원 몰개시선 2권. 삶의 아픈 굴곡을 격조 높은 서정으로 승화시켜온 정양 시인의 시집. 2016년 구상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7년 만에 상재한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유년시절의 일화를 생생한 기억의 언어로 재현한다. 그동안 시대와의 불화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면서 현실과의 긴장을 유지해온 시인은, 민화처럼 남아 있는 1970년대의 풍경을 해학의 정신을 담아 품격 있게 그려낸다. 목차 1부 들마을 민화 겨울밤 / 더 큰 소리로 / 진잡수유? / 짜짜놀이 / 보리타작 / 도둑질 / 다시 만나서 / 짚 한 다발 / 봄잠..
202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시 당선작 FRACTAL (외4편) 장미도 바이닐은 붉은색이다 너는 신중히 지문을 고른다 그때의 RPM은 33이었다 비가 내리거나 겹겹이 두터운 목소리를 가지게 되는 날에는 45가 되기도 했다 바 자리에서는 같은 방향을 보게 된다 헤드 셸이 바이닐 위로 수평 이동을 하는 것처럼 어떤 마음은 물속에 손을 넣어 물거품을 만지는 것 같다 통유리 창 안으로 햇빛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고 나날이 익어가는 얼굴이 앉아 잇다 밤이 오면 산은 하늘보다 어두워진다 경계를 다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둠 속에서도 왜 여기와 저기가 나뉘는 걸까 너는 빈 의자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오래도록 바라보고 조심스럽게 만지면 무언가 생길 것 같은 예감 그런 것들은 오래전에 하수구 속으로 흘러 들어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