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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바깥으로 | 나희덕 시론집

박숙인 2023. 5. 8. 18:00

문명의 바깥으로 | 나희덕 시론집

 

나희덕(지은이)   창비   2023-04-28

280쪽   153*224mm    424g     ISBN 9788936463625

정가   20,000원

 

*표지를 좌우로 펼쳐보면 장정(북디자인)의 의도가 드러납니다. 책등에 큼직한 도형이 걸쳐져서 앞표지의 이것은 마치 'ㄱ'자 형태로 보입니다. 전체적으로 그것은 시꺼멓고 커다란 '디귿자' 모양인데 터진 쪽을 아래로 세운 디자인(민희라)입니다. -카페지기 識(지)

 

책소개

 

대산문학상, 백석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시단의 큰 기둥으로 우뚝 선 나희덕이 시에 대한 철학과 그간의 관심사를 촘촘하게 엮어 시론집 <문명의 바깥으로>를 펴냈다. 1989년 등단 이래 쉼 없이 추구해온 생명·생태·환경 등의 시적 주제가 유려하고도 날카로운 언어로 가득 차 있다.

나희덕은 시인으로서의 작품활동은 물론이고 깊이 있는 비평문과 마음을 보듬는 산문으로도 정평이 난바, 이번 시론집은 평론가로서 또한 에세이스트로서 활발히 활동해온 또 하나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발표한 글들을 벼리고 선별한 다음 일관된 주제와 일정한 호흡으로 치밀하게 구성해낸 덕분에, 에세이처럼 쉽고 흥미롭게 읽히면서도 저자의 문장과 주제의식이 뇌리에 또렷이 각인되는 것이 특장점이다.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창비 2003) 이후 이번 시론집을 묶어내는 데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것은 저자가 얼마나 꼼꼼하게 글들을 직조해냈는지를 드러내는 단면이기도 하다. 이상기후와 팬데믹의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독자에게 <문명의 바깥으로>는 시를 통해 미래를 상상하게 한다는 점에서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저자는 끝까지 시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으며, 세계의 어둠을 밝히며 시가 열어젖히는 새로운 지평에 대해 꼿꼿하게 써내려간다. 그 덕분에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여전히 시 읽기가 가치 있으며 또한 즐거운 일임을 깨달을 수 있다.

 

목차

 

책머리에

제1부
자본세에 시인들의 몸은 어떻게 저항하는가
흙의 시학: 풍요와 휴식에서 인류세의 퇴적물로
인간-동물의 관계론적 사유와 시적 감수성
서정시는 왜 기억과 자연을 호출하는가

제2부
가볍고 투명한, 그러나 두터운 삶을 향하여
문명의 파수꾼 김종철
길 위에서 부르는 만신의 노래
깊은 물속의 그림자
시적 상상력과 종교다원주의
미학적 진원지로서의 기형도
꽃의 뿌리를 향한 행려의 기록
허공에 들린 발을 위하여
내향적 산책자의 수화
그녀는 아주 오래 시를 쓸 것이다

제3부
김종삼의 「라산스카」 시편들에 대하여
김수영을 바라보는 두개의 시각
바로 보려는 자의 비애와 설움
윤동주라는 시의 거울
현대시와 공동체

접기

 

추천글  

 

나희덕의 문학을 직립하게 하는 세개의 중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적 인간’과,라고 쓴 다음에 ‘역사적 인간’을 적는 백낙청, ‘생태적 인간’을 적는 김종철, ‘상상력의 인간’을 적는 정현종. 시인은 역사적 현실의 부름에 응답해야 하고, 그러면서 인류의 종(種)적 책임을 성찰해야 하며, 이런 무거운 사명이 시를 제압할 수 없게 탄력적이어야 한다는 것. 이 가치들이 제 안에 조화롭게 용해되도록 한 촉매는 물론 나희덕 자신이고, 그러므로 이 문학의 이름은 ‘나희덕’일 수밖에 없으며, 어느덧 그도 한국 현대시의 한 중력이 되었다.
몇년간 가까이에서 그를 경험할 기회가 있었으므로 잘 안다. 나는 그처럼 부지런히 공부하는 시인을 본 적이 없고, 그처럼 동료와 제자를 잘 보살피는 교수를 본 적이 없다. 이 책은 그런 저자를 닮았다. ‘공동체’론에서 ‘인류세’론에 걸친 그의 근년 공부의 결실이 치열하고, 윤동주와 김수영에서 조온윤과 박규현까지, 선후배의 시를 보살핀 시인론들이 자상하다. 이 열정과 정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가 애독하는 아우구스티누스를 빌려 짐작해볼 뿐, 사랑이 그의 진짜 중력이라고. 이제 그 사랑이 ‘문명의 바깥으로’ 우리를 이끈다. 

 - 신형철 (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나희덕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 『야생사과』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파일명 서정시』 『가능주의자』,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한 접시의 시』, 산문집 『반통의 물』 『저 불빛들을 기억해』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예술의 주름들』 등이 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나희덕(지은이)의 말

 

지난 몇해 동안 팬데믹을 통과하면서 이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설명해야 할지 혼란스럽고 답답한 나날을 보냈다. 마스크를 벗고 일상을 되찾아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삶의 감각과 방향성을 잃어버린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은 팬데믹 기간에 쓴 책 『저항할 권리』에서 “우리 앞에 놓인 첫번째 과제는 순수하고 거의 방언에 가깝고, 다른 말로는 시적이며, 우리를 사고하게 만드는 언어를 되찾는 것”이라고 했다. 이 벌거벗은 인간과 부조리한 세계를 밝힐 수 있는 마지막 성냥은 약품과 백신이 아니라 시와 철학의 언어라는 것이다. 이 말처럼, 시적 언어란 세상에 대한 절박한 호소와 경고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쓴 시와 시론이 성냥팔이 소녀가 필사적으로 그어대던 성냥의 불꽃처럼 이 시대의 어둠을 조금이나마 밝힐 수 있다면, 하는 다급함이나 간절함이 있었다. 그 간절함이 실제로 읽는 이에게 얼마나 전달되고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흩어져 있던 시 읽기의 궤적을 한자리에 정리하고 보니 이 글들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어렴풋하게 잡히는 듯하다.
(…)
이렇게 멀거나 가까운 시의 성좌들을 바라보며 밤길을 더듬더듬 걸어왔다. 시를 쓸수록 시를 읽을수록 시에 대해 말하는 일이 조심스럽고 어려워진다. 다른 시인의 시에 대해 말한 것이 내 시의 발목을 잡는 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말들을 남겼다니…… 이 패총(貝塚)같은 글들을 떠나보내며 부끄러움이 앞서지만, 이 책이 또 하나의 문턱 또는 매듭이 되어 한두걸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문명의 바깥으로, 시의 바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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