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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인의 시, 그리고
움켜쥔 시간 속에 공허함만이 / 박숙인 늘 동행한 그림자가 있었다 마음에 품었던 그 시간 속으로 빠져들어도 서성거리다 내 곁에서 사라지고 없으니 무언가에 홀린 듯한 모습에 놀라기도 한다 이토록 마음의 살이 빠져나가다니 동그라미 그리며 묶여 두었던 시간이 희미해지다니, 쓸쓸하고 공허하다. 2021, 1. 18
그 빈자리 / 박숙인 가을이라는 계절을 앞세워 다행이다 그 안에서 소꿉놀이하며 놀던 봄과 여름을 지나 젖은 낙엽으로라도 그 바다 앞에서라도 목이 메어도 좋으니 내 마음을 적막으로 물들이지는 말자 견뎌내며 견뎌온 시간은 위로가 되지는 않더이다 눈부셨던 한낮을 뒤로하고 밤이면 별빛과 동행하며 내딛는 발걸음에 힘을 줘도 너에게로 가는 길을 잃어버려서일까, 무심히 무심히 흘러가는 세월을 붙들고 입안에서만 맴돌았던 말들과 내 안에 웅크렸던 생각을 꺼내어 가을이 왔다고, 슬며시 그리움의 거리를 좁혀봐야겠다. 2021, 10.
가을의 자리에 / 박숙인 쓸쓸함이 잠시 머뭇거린다 해도 홀로 내버려 두지 말자 바스락거리는 낙엽이라도 손에 쥐고 가을 햇살에 내밀어 보자 반짝이던 시간이 그 안에서 소리 없이 피어날 것이니 저 문밖의 소리에도 귀 기울여 보아라. 2021, 10.
맑은 날 / 박숙인 나뭇잎이 발밑에까지 차올라 가을아, 하고 나지막이 불러본다. 내 손녀 부르듯이 다정하게 부르는 그 이름, 반짝이고 출렁거리게 저곳의 맑은 하늘이 내게로 오는 길을 잃어버리지나 않았는지 모퉁이에 알록달록한 잎들도 흘러들고 쏟아지는 햇볕에 앙상한 손을 흔들며 저만치서 미소 짓는 어머니 생각나 내 감정을 훅 건들며 한없이 파고드는 눈물은 긴 하루가 될까 싶어 꽃샘바람처럼 빠져나가도록 뒀다 오랜만에 풀어 놓았던 보따리를 주섬주섬 싸고 있는 어느 맑은 날에,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2021, 10,
길 위에서 / 박숙인 물들어가고 있다 각각의 사연들도 흘러들어 애틋한 시간 속에서 눈물도 없이 벤치에 앉아 밀려오는 생각들 거두려 하는가! 먼 하늘가에 어떤 추억을 공유하며 그 주변을 맴도는 달처럼 돌고 돌아보는 길 위에서 긴 이별을 하는 사람처럼 당신과 내가 기억하고자 하지 않아도 그날이 생각나리라. 2021, 10,
그 이별이라는 것은 / 박숙인 이렇듯 생생한데 준비 없이 접하니 더 추웠겠다 바람처럼 스치며 지나갔듯이 그렇게 받아들이면서 마음의 들여놓은 것들 슬픔으로 다가오기도 하겠지만 기억 언저리에 맴돌았던 다정한 부름이 있어 꼬물거리는 생각들 펴놓다 접었다 그러기까지를 수없이 하여도 이별의 시간은 더 또렷해졌을 테니까 그러니 사랑아 안녕하자. 2021, 10,
익숙한 것에 대하여 / 박숙인 겨울의 길목에서 서성거리다가 어느새 두 계절을 지나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니 세상의 귀퉁이에서도 시간이 끌고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세월이 접혔다고 생각들 하지 않을 것이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걸까, 노을 자락 앞에서 슬픈 미소 짓다가도 새롭게 새날을 맞이하는 것을 익히 알면서도 낯선 날이 더러 있을 때 자신에게 묻는다 무슨 그림을 그리려고 그 수많은 날을 방황에 들었는지를, 피어오르고 피어나는 것들 접어두고, 두면서도 다행히 이 가을날에 고개를 내미니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피력하며 내어놓자고, 길 위에서 서성이는 그들도 머뭇대다가 놓쳐버리는 버스처럼 아마 같은 생각에 머뭇거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202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