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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인의 시, 그리고
모든 풍경에는 바람이 있다 김광기 바람이 분다. 낮이나 밤이나 부는 바람, 바람 속에는 풍경이 있고, 풍경이라는 말에는 바람의 볕, 바람의 그림자가 숨어 있다. 바람 곁에도 있고 그 뒤에도 있는 가십거리로 전달되며 알코올 중독자로 찍힌 그 형한테서 전화가 왔다. 나, 요양원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아. 마누라가 좀 들어가 있어 달래. 근데 어쩌면 좋으니,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뇌경색 네 번이면 다들 죽는다는데 다섯 번을 맞고도 나는 아직 살아 있다. 눈도 잘 보이지 않고 걷지도 못하고 왜 죽지는 않는지, 사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그의 어눌한 말투를 들으며 그래도 사는 것에 적응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우물쭈물 전화를 끊는다. 시를 쓰기 위해 먹기 시작했다는 술이 그를 먹어치우고..
소리 나지 않는 글 추프랑카 아름다운 국어책을 무척 사랑했지만 2학년이 되도록 글을 읽지 못했다 교실 뒤에서 무릎 꿇고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창문을 닦고 변소 청소를 했다 소리 나지 않는 나의 글 언니들은 큰소리로 나, 너, 우리…… 교과서를 읽고 또 읽었다 어머니, 아버지…… 날마다 아버지를 먹었다 허수는 먹고 먹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허수를 먹고 허수 속에 웅크린 낱말, 아버지 선생님은 내게 읽기를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모든 낱말들이 아버지란 발음에 잡아먹히는 줄 까맣게 몰랐던 나의 선생님 엄마는 무논 벼 베기를 미루고 숯다리미에 숯불을 담아 한복을 다려 입고 떡 한 시루를 쪄 교무실로 이고 왔다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잃은 나는 착하신 선생님과 착하신 엄마를 하루 종일 입 안에 넣고 굴렸다 아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