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4/22 (3)
박숙인의 시, 그리고
홍범도가 오셨다 이동순 홍범도가 오셨다 눈부신 아침햇살로 오셨다 무지와 맹종 걷어내라고 오셨다 홍범도가 오셨다 실안개 바람 향기로 오셨다 사람을 더욱 사랑하라고 오셨다 홍범도가 오셨다 돌주먹 무쇠주먹으로 오셨다 야만과 맹목 깨어 부수라고 오셨다 홍범도가 오셨다 활과 화살촉으로 오셨다 우둔과 무책임 단번에 쏘아 넘기라고 오셨다 홍범도가 오셨다 밀물과 썰물로 오셨다 자신을 서둘러 변혁하라고 오셨다 —계간 《문학청춘》 2024년 봄호 --------------------- 이동순 / 1950년 경북 김천 출생.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등단. 시집 『개밥풀』 외22권.
새 박성현 새가 날아와 곁에 앉았습니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가 아침이면 떠났습니다 어젯밤에는 새의 깊은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부리를 열었는데 당신이 웅크려 있었습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당신을 꺼냈습니다 차고 앙상한 팔과 다리가 쑥쑥 뽑혔습니다 당신이 없는 곳에 벼랑만 가팔랐습니다 당신의 팔과 다리를 들고 벼랑에 올랐습니다 몇 년이고 비와 눈과 바람을 짊어졌습니다 매일매일 새가 날아왔습니다 매일매일 웅크린 당신을 뽑아냈습니다 —계간 《상상인》 2024년 봄호 ------------------- 박성현 / 1970년 서울 출생. 2009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으로 시 등단. 시집 『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 『내가 먼저 빙하가 되겠습니다』.
손택수의 「나뭇잎 피어날 때 피어나는 빛으로」 감상 / 나민애 나뭇잎 피어날 때 피어나는 빛으로 손택수(1970~) 어디라도 좀 다녀와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을 때 나무 그늘 흔들리는 걸 보겠네 병가라도 내고 싶지만 아플 틈이 어딨나 서둘러 약국을 찾고 병원을 들락거리며 병을 앓는 것도 이제는 결단이 필요한 일이 되어버렸을 때 오다가다 안면을 트고 지낸 은목서라도 있어 그 그늘이 어떻게 흔들리는가를 보겠네 마흔몇해 동안 나무 그늘 흔들리는 데 마음 준 적이 없다는 건 누군가의 눈망울을 들여다본 적이 없다는 얘기처럼 쓸쓸한 이야기 어떤 사람은 얼굴도 이름도 다 지워졌는데 그 눈빛만은 기억나지 눈빛 하나로 한생을 함께하다 가지 나뭇잎 흔들릴 때마다 살아나는 빛이 그 눈빛만 같을 때 어디 먼 섬이라도 찾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