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숙인의 시, 그리고

가을 보내기/ 박용신 본문

[白岩 박용신 시인]

가을 보내기/ 박용신

박숙인 2022. 11. 30. 14:09

 


 
가을 보내기 / 박용신
 
두물머리 샛강, 아직은 미명(微明),
단풍 잎새로 바람이 한 줄, 찬비가 쩜, 쩜,
가을새가 떠나간 쪽배 깃대에 시린 허공(虛空)이 깊다.



목탄난로에 장작을 지펴 그대가 기침할 때를 기다려,
더깨끼고 우그러진 노란 주전자에 차를 우린다.



모처럼 규알 찻잔을 꺼내 접시 받침을 준비하고,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기다릴 수 있는 시간, 창 밖으로 시간이 멈춘 듯, 옛 스럽게 "철거덕"이며
화물열차가 지나고, 적당히 볼륨을 낮춰 놓은 턴테이블 진공앰프 스피커로
"슈베르트의 송어"가 경쾌하게 흐른다. 피아노 중주 선율에서 민트 향내가
방안 가득 번질 즈음, 비로소, 그대를 깨워 배냇향 짙은 우전차를 마신다.



소소한 일상(日常)이 아름다운 날들이 되는 당신의 곁,
안식(安息)할 수 있고, 안주(安住)할 수 있음이 다행함으로
삶의 구경과 남은 생(生)의 이정표가 된 쉼표의 계절,
가을은 시간의 복선(伏線) 속에서 너무 쉽게 "나"를 용서 했다.



이제 곧, 이 비가 그치면 잎들은 속절없이 나무를 버리고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흙으로 귀의(歸依) 하겠다.

계절이 허락한 작별의 시간, 헐거워진 가지에 여백 안으로
또 다른 공허(空虛)가 자리 한다.



이제 우리,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저 그리움들이 지칠 때 까지_


                                 2013.11.24   풀잎편지 - 백암 박용신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