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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山寺)에서 가을 떠나 보내기/ 박용신 본문

[白岩 박용신 시인]

산사(山寺)에서 가을 떠나 보내기/ 박용신

박숙인 2022. 11. 30. 14:19

산사(山寺)에서 가을 보내기
<경남 고성 옥천사에서의 하루>


# 여름내 버릴 수 없었던 것들을 이 가을, 나무가 낙엽을 보내듯 모두 떠나 보낼 일이다. 그리고 아다다처럼
  살 일이다. 비워낸 가슴으로 찬바람이 불어도 견딜 일이다. 견디면 다시 봄이 오니까.(옥천사 경내에서)

산사(山寺)로 가는 길, 바람이 분다. 나무들이 늦가을 갈바람에 버티고 버티던 잎들을 속절없이
떨구어 내고 있다. 누가 오랠 일도 없고 가랠 일도 없는 산사로 가는 길, 여름내 버릴 수 없는
것들이 가슴 속에 남아 있어 힘겨운 날을 보내 왔다면 훌쩍, 거기에 가볼 일이다. 산길 위에서
버려 내지 못한 세상 응어리 들을 목청 돋우어 토해 내, 마음을 비워 볼 일이다. 때를 알아 스스로
비워 내줄 아는 나무들의 지혜를 배워 다가오는 겨울엔 백치처럼 아무 생각없이 화덕에 고구마나
구워 먹으며 없는 듯 살아 볼 일이다.

# 산사로 가는 가을 길, 겨울 준비를 마친 나무들이 잎들을 떨구고 있다. 이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다. (연화산 암자로 가는 길 옆으로 옥천사 범종각이 서 있다.)

경남, 고성, 옥천사(玉泉寺) 오르는 길.
언덕배기 고샅길 돌아 스산해진 길 위에 잎들이 지고 있다. 아직은 푸른 것들도 남아 가을이
더 짙은 훗훗함, 계절의 끝과 시작이 공존하는 묵시(默示)에 계절, 꼭대기 나뭇잎 진 파란 하늘에
여백 사이로 가을새가 떠나고, 생경한 가지에 한점 노오란 잎새, 파르르락, 절간 풍경(風磬)의

추처럼 달랑 애처롭다.

#잎들이 진 나뭇가지에 여백 사이로 횡한 바람이 지난다. 한 겹 더 가슴에 쓸쓸함이 자리한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저 파란하늘, 괜실히 눈물이 나겠지.

# 산사, 암자로 가는 길위에서 가끔 보고 싶어지는 사람있어, 가을은 그렇게 그리움의 계절이기도하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구르몽의 "낙엽"이라는 시와 친하지 않더라도 발 아래에서
쓸쓸하게 부서지는 낙엽들의 생애를 한번쯤 생각하게 되는, 해서 집으로 돌아와 나도 까짓 거
시 한 줄 써볼까? 노트 맨 윗줄에 "낙엽, 단풍, 아니 쓸쓸한 낙엽, 아닌데..." 밤새 끙끙 대다가
날밤을 새는... 시인 아무나 하나. 어쨋거나 낙엽이 땅 위로, 내 바바리 깃 고추 세운 어깨 위로,
개울에 이끼와 돌과 냇물에 명경(明鏡) 위에도 속절없이 떨어져 겹겹이 초개(草芥)처럼 쓰러져 간다.


#번뇌 놓은 잎들은 어디로 가는가?  결국 흙으로의 귀의(歸依). 흙이 되어 편안한 안식(安息)에 들겠다.

번뇌(煩惱) 놓은 잎들의 고즈넉한 투항(投降), "사르- 휘리르르륵" 겨울로 가는 나무들이 여름내
준비하여 오케스트라로 연주해 주는 숲속에 마지막 세레나데, 낙엽 지는 소리는 다음 생을 위한
나뭇잎들의 유언(遺言)이 되어 길 위에서 G선상의 아리아처럼 처연하게 흐른다. 겨우 유서(遺書)
몇 자, QR코드로 남기고 돌아서야 하는 일생, 짧은 생의 한이 서렸는가? 늙은 노승의 손끝을 넘는
경전 책장에 버거움처럼 찬바람에도 낙엽들은 쉽게 일주문 경계 너머 다비(茶毘)에 들지 못하고
"연화산 옥천사" 현판만 바라보다  찬서리 겨울을 맞는다. 결국 본래(本來)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한
흙으로의 귀의(歸依), 어쩔 수가 없는 거룩한 패배(敗北), 그렇게 옥천사 오르는 길 위에는 잎들과
이별을 위한 야단법석(野壇法席)이 유쾌하게 진행되고 있다.


#옥천사 일주문, 완전 불타 오르지 못한 채 지고 있는 나뭇잎, 여름내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휘리릭" 나뭇잎 지는 소리가 G선상의 아리아가 되여 산사오르는 길위에서 처연하게 흐른다. (천왕문 옆)

일주문을 지나 1km 남짓 갈참나무 군락지에서 나뭇잎들과의 실랑이를 뒤로 천왕문이 섬뜩 다가선다.

버릇처럼 전각 옆을 돌아 계단을 오른다. 왜일까? 눈을 부릅뜬 저 천왕들과 대적할 자신이 없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주눅, 비파를 들고 검을 들고 무조건 굴복시키려는 가당찮은 위세, 슬그머니 돌아
왼편 녹녹한 돌계단을 오른다. 몇 발자국, 다 쓰러져 가는 붉은 벽돌담에 비각 하나 그리고 하마비
(下馬碑), 당시 숭유억불 정책으로 절집들이 기를 못 펴던 시절, 웬 하마비일까? 그 옛날, 이 절간에
시주를 많이 했다는 "호조참판 안공 선경비(1922)"다. 당시 위세를 부리던 선비 고관대작 들도
이 곳에서 말을 내리라 했으니 가히 옥천사의 위상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길옆으로 "호조참판 공덕비와 하마비"가 있다. 당시의 옥천사 사세를 가늠해 볼수 있다.

왼편 연화산 등산로와 부속 암자 오르는 길 옆으로 경내로 들기 위해 개울 징검다리를 건너 경사가
심한 십여 계단 층계를 오른다. 시야에 너른 마당이 다가서고 바로 오른편으로 아름드리 은행나무,
노오란 잎들이 하늘 하늘 떨어지고 있다. 은행나무 벤취에서 서로 사진을 찍으려 탐방객들의 경쟁이
심하다. 정면으로 규모가 큰 전각이 길게 서 있다. 자방루(滋芳樓)이다. 고색창연한 색채가 제법 오랜
역사를 견디어 온 폼새가 난다. 대각선으로 제법 의젓한 범종각, 옆으로 주렁 주렁 풍성하게 누런
열매를 달고 서 있는 감나무, 마음이 넉넉해 졌다. 축대를 돋우어 단층으로 건축한 자방루 옆을 통과
대웅전 마당으로 들어선다.


# 저 느긋한 풍경 안에서 종소리를 듣는다. 종소리 법문은 늘 나를  슬프게 한다. 할(喝)! 스님의 죽비.
    (범종각)

#자방루(芳樓), 거대한 성채처럼 절 외곽을 둘러쌓아 대웅전을 보호하고 있다. 정면 7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이다.


#자방루 내부, 경남유형문화재 53호인 자방루는 대들보에 하늘을 나는 비천상과 비룡이 그려져 있다.
   사찰의 누각은 대개 2층으로 누각 밑을 통과 대웅전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자방루의 경우 의병과

   승병들의 군사교육을 시키기 위해 단층으로 건립되었다.

# 용이 하늘로 오르기 위해 꿈틀대고 있다. (대들보에 비룡상: 먼지가 덕지 덕지 쌓여 잘 볼수 없었다.)

#선녀가 하늘로 오르려 날개짓하고 있다.( 대들보에 비천상  : 먼지가 쌓여 잘 볼수 없었다.)

주요 가람의 배치는 "ㅁ"자형으로 대웅전을 정면으로 오른편에 탐진당과 진묵당이 배치되어 있고
앞면으로 자방루가 활용성 좋게 개방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대웅전 앞 조그마한 마당으로 연등을
달았던 전선들이 어지럽게 남아있어 대웅전 촬영이 용이 하지 않았다. 대웅전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축대를 돋우어 계단을 조성, 위엄을 갖추게 하였고 뒤로 규모가 작은 취향전, 칠성각, 독성각, 산령

각, 나한전이 옹기종기 자리해 있다.


# 대웅전 (경남 유형문화재 제 132호), 연등 전선들이 철거되지 않아 촬영이 쉽지 않다.


# 대웅전 뒤로 또 한단계 축대를 쌓아 전각들을 배치 하였다. (독성각과 산령각)

설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 10(670년)년 의상대사가 당나라 지엄법사에게서 화엄학(華嚴學)을
공부하고 돌아와 화엄경을 강론하기 위해 창건했다고 전해오는데 통일신라시대 진경국사, 고려시대
진각국사 등이 기거 하며 절을 중수하였고 임진, 정유재란 때는 구국 승병의 군영으로 운영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1733년(영조9)부터 1842년(현종8)까지 이 절에서 340여명의 군정이 기거
했으며 12건물과 12물레방아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20세기 들어 교단정화와 중흥을 위해
헌신한 청담대종사가 1927년에 승려생활을 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매년 9월27일에는 이 절을 개창한
의상대사와 청담대종사의 열반제가 거행되고 있다.

# 전각을 세워 감로수 샘터를 보호하고 있다.

# 옥천수가 늘 마르지 않고 솟아 나는 샘터,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지금도 찾는 이가 많다.

옥천사(玉泉寺)라는 사찰 이름의 유래는 대웅전을 마주 보아 오른쪽 옆으로 맑은 샘이 있는데
아무리 가물어도 샘이 마르지 않고 물맛도 달콤하고 수질이 좋아 옥천수(玉泉水)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으며 실제로 이물을 마신 이들이 위장병과 피부병이 호전되어 지금도 찾는 이가
많다고 한다. 절의 주소지는 경남 고성군 연화산1로 471-9번지 이다.


# 요사채에 지붕위로 주렁 주렁 감이 풍성하다. 이 곳에서 밤새 독경소리나 듣고 싶다.

# 생의 마지막을 뜨겁게 불태우고 세상을 하직 하는 나뭇잎에게 경례.

◎ 옥천사 가는 길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대전까지 와서 대전에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서진주 인터체인지를 통과한 후 통영방향으로 약 10km를 더 달리면 첫 톨게이트인 연화산
나들목이 나온다. 연화산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우회전, 1009번 도로를 타고 2km→영오면
4거리에 와서 방향을 틀어 1007번 도로에 진입 2km→옥천사입구로 온다. 옥천사 입구에는
“옥천사입구”라는 도로표지판이 있고 큰 고목 두 그루가 서 있다. 옥천사입구에서 3km
산 속에 옥천사가 있으며 차량은 사찰 마당까지 들어갈 수 있으므로 곧장 길을 따라 올라와야
한다. 걷지 않아도 된다. (서울에서 소요시간 : 4시간) (연화산 나들목에서 7분 소요)


취재 2014.11.9  기사등재  2014. 11. 25   풀잎편지- 백암 박용신
                                                                                    (Photo Healing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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