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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인의 시, 그리고
[2022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몸의 기억으로 ‘나 사는 곳’을 발견해가는 언어-신미나론/염선옥 1. 몸의 기억에 부여되는 리얼리티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결과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쩌면 예술이 끝자락에 도달해 있고 이제 “규정 불가능성”(하이데거)에 빠진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현대는 예술 과잉의 시대이자 ‘무(無)예술성’의 시대이기도 하다. 이는 헤겔이 비유한 것처럼, 이제는 예술이 인간의 비대해진 욕망을 더는 채워 줄 수 없다는 “예술의 종언”을 증명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우리가 쓰고 읽는 시 또한 예외가 아니다. 현대성과 서정성이 미학적으로 반목을 거듭하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은 이분법적 폐쇄성이 낳은 관념적 산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시의 ..
2022년 〈상상인〉 신춘문예 당선작 윤곽 혜 원 당신은 손의 윤곽이 열쇠와 닮아서 아침에 손을 떨어뜨린 사람 내 손은 정오의 구멍처럼 환하고 V자로 깎아 낸 아홉 개의 벤 자리와 여덟 개의 이가 있는 당신의 열쇠는 부드러운 곡률을 갖고 있어서 우리는 쉽게 통과하네 타인의 주머니에 쉽게 손을 맡기고 열쇠를 만지듯 가볍게 만지작거리고 백 년 동안 열쇠가 녹고 있지 녹은 자리가 예뻐서 당신이 또 손을 어루만지면 너무 헐거워 당신은 한 번도 내 손을 열지 못했지 다른 손이 필요하다고 믿었지 윤곽이 녹아서 백 년 동안 열쇠만 깎았지 당신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한 일은 최선을 다해 손을 오므렸던 일 손을 펴면 열쇠의 깎은 자리가 사라지고 내 주머니에서 손이 사라지고 주머니에 타인의 열쇠가 가득하네 어느 날 모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