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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시 읽기]

시 / 박정대

박숙인 2024. 4. 12. 13:19

시 /  박정대

 

촛불을 켜고 바람의 모습을 본다

쌀랑쌀랑 바람이 불었다

세상을 끄고 조용히 누워

창밖으로 떨어지는 눈발의 숫자를 헤아렸다

간혹 다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었다

잠의 안팎에서 바람은 촛불의 허리를 흔들었다

멀리 있는 것들은 멀리 있어서

다행스럽게 빛났다

가까이 있는 생활은 추웠으나

촛불 한 자루로

이 겨울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감자 몇 알과 담배가 여전히 남아 있으니

밤새 싸락눈은 내려와 어둠을 덮어 가느니

아침이 오면 이팝나무 위로도

눈꽃 가득 피어나겠다

쌀랑쌀랑 바람이 분다

아직 잠들지 않은 새벽의 이마 위로도

눈은 내린다

 

 

 

        —웹진 《공정한시인들의사회》 202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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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대 / 1965년 강원도 정선 출생. 199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시집 단편들』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아무르 기타』 『사랑과 열병의 화학적 근원』 『삶이라는 직업』 『모든 가능성의 거리』 『체 게바라 만세』 『그녀에서 영원까지』 『라흐 뒤 프루콩 드 네주 말하자면 눈송이의 예술 』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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