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숙인의 시, 그리고
줄장미가 피어나는 생각 (외 2편) / 동시영 본문
줄장미가 피어나는 생각 (외 2편) / 동시영
여자가
“밥보다 마음을 더 잘 먹어야 한다”고 말하자
남자가
“마음보다 밥을 더 잘 먹어야 한다” 말한다
모르는 ‘나’를 따라가다
키 큰, ‘습관’ 따라 시장엘 간다
제철 없는, 물건들 사고파는 시장 속
팔리지 않는 신新풍속이
제철처럼 싱싱하다
‘껍질’이 몸에 어울리는 옷을 오래 골라 사자
‘알맹이’도 맘에 어울리는 옷을 한 벌 산다
밤이 어둔 방에 불 켤 스위치를 사자
낮이 어둔 맘에 불 켤 스위치를 산다
카페가 내게 다가오자
‘슬픔’과 ‘기쁨’이, 누굴 만날 거냐?
앞다퉈 묻는다
‘빈 칸의 카니발’을
혼자 팔고 혼자 사고
가끔은
나쁜 생각에 팔려나간다
‘버르장머리미장원’ 앞
버릇없이 막자란 줄장미가
사람들 생각을
찌르다 놓다, 장난치고 있다
수평선은 물에 젖지 않는다
수평선은 물에 젖지 않는다
그리움에 젖는다
없음을 닦아내는 창,
물봉선이 피어 있다
여뀌꽃이 오고 있다
낙엽은 낙서
목숨의 오후가 붉다
외롭지 말라고
그림자 하나 따라온다
나 너 그리고에 입맞춤한다
망각을 색칠하는 하양
역사는 남겨진 꼬리를 밟고 가는 길
꼬리를 밟자, 보이지 않던 몸통이 꿈틀한다
강화도령 살던 터, 용흥궁
짧은 하루가
길고긴 역사를 쓴다
옛터는 메아리 몸
오늘만이 한 점 밝음
허공은 텅 빈 거리距里
하늘보다 가까운 시선은 없다
망각을 색칠하는 하양[白],
눈부시다
―시집 『수평선은 물에 젖지 않는다』 2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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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영 /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박사 졸업.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교 인문학부 수학. 한국관광대학, 중국 길림 재경대학교 교수 역임. 2003년 《다층》으로 등단. 시집 『미래 사냥』 『낯선 신을 찾아서』 『신이 걸어주는 전화』 『십일월의 눈동자』 『너였는가 나였는가 그리움인가』 『비밀의 향기』 『일상의 아리아』 『펜 아래 흐르는 강물』 『마법의 문자』, 연구서 『노천명 시와 기호학』 『한국문학과 기호학』 『현대시의 기호학』, 기행 산문 『여행에서 문화를 만나다』 『문학에서 여행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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