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白岩 박용신 시인] (12)
박숙인의 시, 그리고
고엽 : Autumn Leaves> /박용신 곱게 늙어 간 단풍들이 관목 늘어선 산사 우듬지 둠벙에 엽서(葉書)가 되어 방부(房付)에 들었다. 공부는 풍경(風磬) 소리, 엽서에 악보도 모르는 어린 겨울은 바이엘을 시작하고, 체르니를 끝내기 전, 아직 떠나지 못한 늙은 가을악사의 고엽(Autumn Leaves:枯葉)연주를 즈믄 밤까지 따라 하다 제풀에 잠이 들고, 잎새 지샌 "둠벙"으론 고단함이 자리한다. 도량석(道場釋)이 울 때, 오래된 LP판을 틀어 성숙된 겨울이 잠을 깨기 까지, 샹송을 듣는 시간, (Tombe La Neige-Adamo) 창 밖으론 눈이 내리고, 미혹(迷惑)의 든 단풍들은 극락(極樂)으로 날아 든다. 2013.12.6 풀잎편지 -백암 박용신 (Photo Healing Essay)
아주 오래된 시간 /박용신 내게 아름다운 날들은 얼마나 남아 있는 걸까? 침묵할 수 있고, 기다릴 수 있고, 약속할 수 있고, 사랑할 수있고, 눈물 흘릴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날들은 내게 얼마나 남아 있는 걸까? 당신 생에 매달려 살며 "침묵"은 막다른 길을 만나듯, 그렇게 필요했고, 바람같은 마음 붙잡고 살면서 "기다림"은 꽃의 시간을 지나 화려한 열매가 되었건만, 아직도 기다려야 하는 시간들이 남아 있는 걸까? 달빛 아래 빛나던 "약속"은 이제 마지막 손가락에도 남아 있지 않고, 함께 대양을 누비던 세월의 더깨는 훈장처럼 빛나지만, 흔적으로 남은 영광의 상처들이 기여 오늘, 아프고 아프더니 기약못 할 이별을 얘기한다. 사랑이라 확신한날 흘려야 할 "눈물"은 이제 삶의 마지막 진통제가 되어 한시적 휴..
인연의 계보(係譜) / 박용신 봉정암 오르던 사람들이 간절(懇切)한 고백(告白)을 품고 백담사 내천에 돌탑을 쌓았다. 수천 수만 탑, 누구에게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는 인연의 계보(系譜) 따라 탑들은 하나 둘 씩 늘어 갔고 계절 끝에 서서 푸른 날들이 찬비에 마침표가 되던 날, 산문(山門)에는 빗장이 걸리고, 갈 곳 잃은 돌탑들은 대청봉 면벽(面壁) 삼아 참선(參禪)에 들었다. 동안거(冬安居) 한 철 보내고 나면 저 서원(誓願)의 돌탑들은 봉정암 올라 부처가 될까? 아직 겨울은 초저녁인데 오세암 간 마고할미는 소식도 없다. 2013.11월 어느날 백담사 내천에서 풀잎편지 - 백암 박용신
가을 보내기 / 박용신 두물머리 샛강, 아직은 미명(微明), 단풍 잎새로 바람이 한 줄, 찬비가 쩜, 쩜, 가을새가 떠나간 쪽배 깃대에 시린 허공(虛空)이 깊다. 목탄난로에 장작을 지펴 그대가 기침할 때를 기다려, 더깨끼고 우그러진 노란 주전자에 차를 우린다. 모처럼 규알 찻잔을 꺼내 접시 받침을 준비하고,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기다릴 수 있는 시간, 창 밖으로 시간이 멈춘 듯, 옛 스럽게 "철거덕"이며 화물열차가 지나고, 적당히 볼륨을 낮춰 놓은 턴테이블 진공앰프 스피커로 "슈베르트의 송어"가 경쾌하게 흐른다. 피아노 중주 선율에서 민트 향내가 방안 가득 번질 즈음, 비로소, 그대를 깨워 배냇향 짙은 우전차를 마신다. 소소한 일상(日常)이 아름다운 날들이 되는 당신의 곁, 안식(安息)할 수 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