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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인의 시, 그리고
지는 꽃을 보며/이향아 지는 꽃이 아름답다는 것을 올 봄에야 알았다 그것 하나 알기가 왜 이리 더딘가 웃음소리 하얗게 반짝이는 축제 앞바다엔 비척이며 새끼 갈매기들 떠 있고 먼 바다 채비하는 부산한 여객선 질컥이는 부두에 멀찌감치 비켜서서 지는 꽃이 아름다워 지는 꽃이 아름다워 올 봄에야 겨우 깨닫고 있다 그것 하나 알기가 왜 이리 어려운가 봄이 아주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아름다운 슬픔/이향아 바람에 잎 지듯이 따라가다 보면 가고 싶은 그 언덕에 오를 수 있을까 저녁 들길은 눅눅하게 가라앉고 새들도 숲을 향해 사무칠듯 날아간다 파장의 하늘 끝에 피를 쏟는 구름 참지 못할 울음처럼 피어나는 노을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듯이 한 가지로 목 매달아 기다린 것은 저렇게 눈부신 슬픔이었구나 개망초 검푸른 그늘을 딛고 출렁대는 가슴으로 겨우 그걸 알기까지 나 너무 어리석게 헤매었구나 긴 숨 모아 바라본다 아름다운 슬픔
그립구나, 진부한 것들 / 이향아 정겨운 말들은 이미 낡았다 밥이니 집이니 하는 말들이 그렇듯이 어머니로 이어지는 산줄기 등성이에 깃을 치는 자식이니 고향이니 그렇고 그런 것들 물보다 진하다는 피도 다그쳐도 끝끝내 진실 하나뿐이라는 오래된 사랑도 낡을 대로 낡았다 진부하다 세상에는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는 것들 뼈대니 골수니 눈물이니 하는 최후의 쑥굴헝처럼 진신사리처럼 지긋지긋한 고집불통의 묵은 등걸 같은 것들이 있다 가치 있는 것들은 가치가 있다면서 자꾸만 되풀이하다가 쓰러진다 과속하는 세상에 살아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인가 쓰러지지 않고 살아 있는, 그립구나, 진부한 것들 진부한 말들은 대체로 진실하다
1) 봄 때문이다 / 이향아 날이 흐리다. 안개 때문이다. 안개 같은 저 이슬 때문이다. 새들도 하나씩 떠나가고 없다. 가라앉은 하늘 무거운 먼지 때문이다. 날이 어둡다. 아지랑이 때문이다. 아지랑이 같은 내 눈물 때문이다. 슬픔은 언제나 꽃숭어리보다 향기롭고 그래도 날이 흐리다. 모든 게 저 봄 때문이다. 봄만 아니면 아무 탈도 없다. ~~~~~~~~~~~~~~~~~ 2) 떠나면 떠나리라 / 이향아 꿈이 무어냐고 캐묻지는 마세요. 철없이 키 높은 밀물일 뿐입니다. 바람 부는 황야의 지평선을 치달려서 산 하나 쌓고, 나도 산이 되고 싶은 실속 없이 눈만 높아 숨이 찹니다. 평생에 한 사람만 사랑하리라, 맑은 피 봇물 터서 맹세를 한 후 쓸개는 헹구어다 볕뉘 끝에 매달고 오동나무 다듬어서 둥지를 틀어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