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숙인의 시, 그리고

가려움 / 이근화 본문

[ 좋은시 읽기]

가려움 / 이근화

박숙인 2024. 3. 24. 15:47
가려움


    이근화
 
 
머리가 가려운 것은 머리카락 때문이 아니다
머리카락을 잘라도 남는 가려움
머리를 밀어도 남는 가려움에 대한 생각들
 
그건 당신이 없어야 당신이 그리운 것과 마찬가지일까
옆에 있는 사람을 끝없이 그리워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머리를 긁으며 그리움의 전문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피아노 연주를 마치고 배관을 손보는 사람의 전문성은 어떤가
비행기를 조종하다 양파를 절이는 사람의 전문성은 어떤가
인생 전환의 시점에서 플러스마이너스를 따지지 않는 말 못할 가려움
 
가려움의 마을에서
가려움의 집을 짓고
가려움의 난로를 피우고
가려움의 허기를 지핀다
 
말 못 할 곳이 가렵고
너의 오만과 허세가 가렵고
나의 두려움과 떨림이 온통 가렵다
 
어느 순간 가렵지 않게 되었을 때
웃음이 날지 울음이 날지 그건 모르는 일
끝까지 가렵다 해도
가려움에 대해 묻지 않을 일
 
바꾸지 못한 물건
바꾸지 못할 마음
바꾸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 사람의 전문가적 시선




             —월간 現代文學》 2024년 3월호
-----------------------
이근화 / 1976년 서울 출생. 2004년 현대문학》 등단시집 칸트의 동물원』 『우리들의 진화』 『차가운 잠』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뜨거운 입김으로 구성된 미래』 『나의 차가운 발을 덮어줘』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