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숙인의 시, 그리고
2024년 영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극빈 / 김도은 본문
[2024 영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극빈 / 김도은
그 많은 소란과
발걸음과 악다구니들을 겪고도
골목은 여전히 휑하다
그늘이 묻은 소매 끝에
삶은 돼지머리 냄새가 가득하다
이마를 풀어헤친 나무의 복선사이로
저기, 좁은 골목 끝으로
환한 끝이 보인다
그 끝으로 얼마나 많은 이쪽을
저쪽으로 끌어들였나
기울어진 지붕 끝으로 끌어 내린
저 어둑한 그늘들은 누구의 뒤끝들인가
더는 새것이 찾아오지 않는
양쪽을 둔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제
아무도 이쪽 또는 저쪽에 속지 않는다
한때 유일한 재산이었던 포물선들은
조금만 펴거나 휘어도 뚝 부러지고 말 것 같은데
군데군데 구멍 난 혁명가를 입은 노인은
질긴 옛날 노래를 잇몸으로 부른다
극빈은 출렁이는 극한의 자세
팔꿈치에 휘감은 불안은 바짝 마른 저수지보다 컷다.
여전히 붙잡아두고 싶은 것들은 아름답지만
이 극빈도 조만간 헐릴 것이라는 만들
그래, 함께 헐리면 편하지
지탱이 지탱을 업고 하는 말들은 그마저도
죄다 빌려 온 말들이라는 것
돌려줄 곳도 없는 말들이라는 것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는
어둑한 한 평의 미궁들엔 다행이도
무더위가 웅크리고 있다는 것
들어올 것도 없이 여미는 겨울보다는 낫다는 것
홀로, 깊은 안쪽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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