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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신춘문예]

2024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운주사 천불천탑 / 김준경

박숙인 2024. 1. 1. 15:24

2024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운주사 천불천탑 / 김준경

 

 

그 누구도 시키지 않았고 그 누구도 떠밀지 않았다

저마다 한손에 정을, 다른 손에 망치를 들고 찾아왔다

운주계곡 조용한 골짜기를 따라 돌을 쪼는 소리가 이어진다

 

하나의 고통을 담아 한번의 망치질, 하나의 괴로움을 담아 쌓은 한층

사바세계로부터 깎여나간 마음 부여잡고 눈앞의 돌을 깎아 나간다

 

참아낼 수 없는 아픔을 돌위에 올려 깎아서 내버리면 눈이 나오고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돌위에 올려 깎아서 내버리면 귀가 나오고

벗어날 수 없는 원망을 돌위에 올려 깎아서 내버리면 입이 나온다

 

고해의 파도 속에서 멈추지 않고 들리는 돌 쪼는 소리

 

고통이 모여 돌을 가루로 만들고 괴로움이 쌓여 탑을 이룰 무렵,

돌속에서 웅크려 있던 부처님이 들꽃같이 환하게 피어난다

풀내음을 품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 앞의 민초를 맞이한다

투박하고 하찮아 보이지만 그렇기에 누구보다 가까운 그 모습

그 거친 어깨 끌어안고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조용히 울고 싶다

고해의 파도에 깎여나간 마음 쥐어짜내 입술 깨물고 울고 싶다

 

마음의 부스러기가 섞여 나온 눈물을 부처님께서 가사자락으로 닦아주면

지나간 괴로움을 땅에 내려놓고 다가올 염원을 부처님께 올린다

염원이 모여 천개의 석탑이 되었고, 천분의 석불이 되었다

천가지 괴로움과 천가지 염원으로 세워진 민초들의 작은 불국토

같은 모양없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저마다의 위치에 서서 정토세계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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