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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인의 시, 그리고
가을밤 / 박숙인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자꾸만 뭔가를 쓰고 싶어진다 그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아득함이 시작되었다 더러는 그리움이고 더러는 슬픔이 담긴 깊고 깊은 그 서랍을 들여다본다 구석으로 밀어 두고, 두고 아파하다 피어오르지만 열릴 때마다 아득지만, 하나일 때가 있다 저렇게 색색의 감정을 담고 있으니 피어오르다 붉어지고 피어오르다 쓸려간다 쏟아부었던 시간은 헛되지 않아 마음 언저리에 서성거리다 그 가을만큼 외로워지기도 한다. 2022, 10. 31
가을에는 / 박숙인 강마을 언덕에 갈대처럼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렸다 고향 마당에 희미하게 퍼지는 안개처럼 외로움이 스며드는 날에도, 자작나무 숲길의 풍경을 곁에 두고 싶을 때도 접힌 세월만큼이나 그리움 한가득 마음의 꽃으로 피어날 때도 그랬었지. 2022, 10. 31
늦은 오후에 /박숙인 몇 걸음 가다 뒤돌아본다 바람이 한바탕 지나가고 흩날리는 먼지가 후드득 떨어지는 꽃잎과 같다 저 스스로 모여든 나뭇잎들 기꺼이, 한 번 더 네가 주는 선물들이 쓸쓸을 품고 있네 투명해서 더 좋은 저 하늘에 시큰거려서 눈을 감는다 흔하디흔한 단풍잎 발아래로 떨어지고 앙상한 풍경만 남는다 해도 가을빛이 쏟아져 내리니 때로는 그 쓸쓸을 감내하며 서성이고 싶은 가을, 그 거리가 붉다. 2022, 10, 31
다시, 가을 / 박숙인 가을빛이 더해져 가고 있다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잎들은 쓸쓸해요, 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한 저 외로움들은 내 머리 위에서 맴도는 잠자리 같다 길 위에서도 바스락이는 잎들에 가을이라고 이름 붙어주는 것도 허무하게 빛났던 시간을 내어주기로 한 걸까? 길목 어디쯤에서 서성거리다 가을 이름표를 건네주고 자신의 길을 열어갈 것이니 널뛰기하다 지친 시간을 흘려보냈어도 그 가을빛을 기억하자. 2022, 10,1
그 가을 속에 / 박숙인 누군가 떠나보내며 어제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지금은 가을이 쓰는 시간이다 하늘빛이 너무 좋아서 이 눈물겨운 날들을 조금씩 조금씩 따스하게 끌어안아야 한다 마음 훑고 지나가는 바람 앞세워 한참 걷다 보면 잎사귀 사이로 숨어든 발 앞에 휘젓는 쓸쓸함은 차고 넘쳐나도 펼쳐진 풍경의 그 끝을 바라보는 오늘도 너는 가을을 사랑이라고 쓰고 있다. 2022, 9.27
가을, 그리고 / 박숙인 가을 소식이 배달 되었다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그리움 하나 곁에 두고 싶은 것이다 온 누리에 가을의 이름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앞마당의 나뭇잎들도 그 계절을 놓치지 않으려는 몸짓이다 노을 지는 창가에 앉아 순간순간 받아 쓰고 싶은 문장들이 몰려오고 있다 빈 곳을 향해 더 채워가고 싶은 마음의 정원에 하루쯤 머뭇거림 없이 무심하게 흘러든 바람이어도 좋은. 2022, 9.27
우체통 앞에서 / 박숙인 마른 잎들은 발길에 차이지 않아도 가을이라고, 바라봐 주길 원한다 남겨 두고 싶은 순간들이 있듯이 그런 날은 따뜻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저 시린 계절에 쓸쓸을 툭툭 털어낼 수 없으니 모든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며 바람의 길에 동행한 저 잎들은 그 앞을 서성거렸고 김광석 가수의 노래가 떠오른 그 아이에게 이 가을과 다시 마주했으니 머지않아 길모퉁이 따라 늘 갔던 공원 의자에 앉아 한 쓸쓸을 더하고 싶은 거다. 2022, 9,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