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숙인의 시, 그리고
황규관의 「길」 감상 / 박준 본문
황규관의 「길」 감상 / 박준
길/ 황규관
가자고 간 건 아니었지만
간 자리마다 허무 가득한 심연이다
떠나자고 떠난 건 아니었지만
두고 온 자리마다 가시덤불 무성한 통곡이다
지금껏 품은 뜻은 내 것이 아니었고
꾸었던 꿈도 내 소유가 아니었는데
지나온 길 위에 남긴 흔적에
왜 가슴은 식을 줄 모르는가
멈추자 해도 가야 하고
머물자 해도 떠나야 하는데
왜 설렘이고 번민인가
바람이고 생명인가
—시집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 2011
..........................................................................................................................
조금씩 이상한 느낌이 엄습했습니다.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는 불안. 한참 전에 지나온 갈림길에서 반대로 들어야 했을까 하는 후회. 다시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아닌 것 같기도 한 의심과 혼란. 하지만 길이 확실하게 잘못되었음을 알 때까지 얼마간 더 걸어야 합니다. 가르쳐주는 사람도 물을 사람도 없으므로 헤매는 이의 발걸음은 오히려 빨라지는 법입니다. 미로 같은 길에 얽혀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해도 혹은 끝끝내 길 없음이라 적어놓은 푯말을 본다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모르는 이 길이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박준 (시인)
'[ 시론 문학이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택수의 「시집의 쓸모」 감상 / 박준 (0) | 2024.04.12 |
---|---|
강인한의 「갚아야 할 꿈」 감상 / 최형심 (0) | 2024.04.12 |
김해자의「꽃잎 세탁소」 감상 / 박소란 (1) | 2024.02.26 |
문성해의「결이라는 말」 감상 / 박준 (1) | 2024.02.26 |
이병률의「어떤 그림」 평설 / 박남희 (1) | 2024.02.26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