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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의 「길」 감상 / 박준 본문

[ 시론 문학이론]

황규관의 「길」 감상 / 박준

박숙인 2024. 4. 12. 13:22

황규관의 」 감상 박준

 

 

길/ 황규관

 

 

가자고 간 건 아니었지만

간 자리마다 허무 가득한 심연이다

 

떠나자고 떠난 건 아니었지만

두고 온 자리마다 가시덤불 무성한 통곡이다

 

지금껏 품은 뜻은 내 것이 아니었고

꾸었던 꿈도 내 소유가 아니었는데

 

지나온 길 위에 남긴 흔적에

왜 가슴은 식을 줄 모르는가

 

멈추자 해도 가야 하고

머물자 해도 떠나야 하는데

 

왜 설렘이고 번민인가

바람이고 생명인가

 

 

 —시집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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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씩 이상한 느낌이 엄습했습니다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는 불안한참 전에 지나온 갈림길에서 반대로 들어야 했을까 하는 후회다시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아닌 것 같기도 한 의심과 혼란하지만 길이 확실하게 잘못되었음을 알 때까지 얼마간 더 걸어야 합니다가르쳐주는 사람도 물을 사람도 없으므로 헤매는 이의 발걸음은 오히려 빨라지는 법입니다미로 같은 길에 얽혀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해도 혹은 끝끝내 길 없음이라 적어놓은 푯말을 본다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모르는 이 길이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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