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숙인의 시, 그리고
김해자의「꽃잎 세탁소」 감상 / 박소란 본문
김해자의 「꽃잎 세탁소」 감상 / 박소란
꽃잎 세탁소
김해자
꽃양귀비 붉은 꽃잎 위에 청개구리가 엎드려 있어서 나도 납작 엎드려 뭐 하나 들여다봤더니, 제 목울대로 꽃의 주름을 펴는 게 아닌가, 그 호박씨만한 것이 앞발 뒷발로 붉은 천 꽉 부여잡고 꽈리 풍선 불어가며 다림질하는 동안 내 마음도 꽃수건처럼 펴지고 있었다
개망초 하얀 꽃잎 위에 나비가 날개를 접고 있어서 나도 땅두릅 그늘 아래서 올려다봤더니, 계란 노른자 같은 꽃술을 빨아대는 게 아닌가, 그 상추씨만한 입으로 꽃잎을 빠는 동안 하얀 베갯잇 같은 구름이 간지러운 듯 몸을 뒤틀었다 하늘이 갓 세수한 듯 말개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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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양귀비와 개망초를 검색하자, 겨우내 잊고 지낸 싱그러움이 무더기무더기 피어난다. 무수한 이미지들 틈에 따사한 햇살이 스민다. 그러나 이런 건 가짜에 지나지 않겠지. 진짜는 인터넷 화면이 아니라 저 바깥에, 울창한 자연에 있음을 안다. 꽃을 기웃거리는 청개구리며 나비며 모두 자연의 일원. 나 또한 다르지 않을 텐데…. 이 당연한 사실을 아주 오랫동안 모르는 체 산 것 같다.
이 시는 내가 모르는 체했던, 몰라도 그만이라 여겼던 중요한 것들을 포착하고 있다. 꽃의 주름을 펴는 청개구리의 목울대, 꽃술을 빨아대는 나비의 입 같은 것. 그 호박씨만한, 혹은 상추씨만한 것. 나를 닮은 것. 그런 걸 보기 위해서는 시인과 같은 자세가 되어야 한다. “청개구리가 엎드려 있어서 나도 납작 엎드려” 보았다는 시인처럼 가까이 더 가까이, 낮게 더 낮게. 그래야만 들 수 있는 풍경, 마음의 환한 세탁소.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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